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난의 행군 (문단 편집) == 개요 == [[북한]]에서 [[1996년]] ~ [[1999년]]경까지 있었던 [[대기근]]과 체제 붕괴 위기. 대한민국 [[통계청]] 추정치로 최소 약 '''10만 명에서 최대 약 40만 명''' 가량이 '''[[아사]]'''했다고 추정된다.[* [[http://www.joongang.co.kr/article/4695274|북한 ‘고난의 행군’ 5년 동안 주민 33만 명 굶어 죽어]]] 이 고난의 행군은 주로 세번째 고난의 행군을 가리킨다. * 첫번째 고난의 행군 이름의 유래는 1938년 말 ~ 1939년 초,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 [[조선인민유격대|빨치산]]이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일본군의 토벌 작전을 피해 100여 일간 행군했다고 주장한 것에서 유래했다.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 [[김일성]]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쫓겨 다니며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유격전]]을 감행했던 시기가 그 유래다. 김일성이 [[동북항일연군]]에 속해있던 시기였다. 한국사 교과서를 통해서도 알려진 [[양세봉]], [[지청천]] 등과 함께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었는데 [[보천보 전투]]도 이 무렵 일어났다. * 두번째 고난의 행군 1956년 [[8월 종파사건]] 전후부터 [[천리마 운동]]이 전개되는 시기까지다. * 세번째 고난의 행군 그리고 1996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제시된 '''3번째''' 고난의 행군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백두밀림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야 한다는 언술에서 나온 것으로 1990년대 계속되는 경제난과 기아를 극복하고 사회적 이탈을 막으며, 주민들의 희생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https://nkinfo.unikorea.go.kr/nkp/term/viewNkKnwldgDicary.do?dicaryId=4|통일부 북한정보 포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